한국이 낳은 천재 이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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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지구

한국이 낳은 천재 이휘소

by 에어 후라이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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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 시절

 

 


1900년대 최고의 이론물리학자였던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밑에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리가 있었지만, 벤저민 리가
더 뛰어났다" 표준모형의 산증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노벨상을
 수상하며 "네가 받은 노벨상은 원래 벤저민 리에게 가야 할 상이다"
벤저민 리, 그는 수많은 과학자의 존경을 받으며 과학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물리학의 발전을 앞당겼습니다.
그가 바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입니다.

 


우주를 이루는 재료인 소립자들을 탐구하여 훗날 전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인용될 소립자 물리학은 다룬 수백 편의 논문을
남긴 벤저민 휘소 리 바로 이휘소 박사입니다.
이휘소 박사는 1935년 의사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이휘소는
어려서부터 논어와 맹자 소설이나 과학책까지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독서광 소년이었습니다.
책을 읽다 문득 동글동글한 세포에 대해 궁금해지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현미경 하나 있어야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소년이었습니다.
바로 현미경값을 벌기 위해 웅변대회에 나가서 탄 상금으로
현미경을 사고야 마는 재주 많은 행동파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국전쟁이 터져 피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던 이휘소 갖은 노력 끝에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 무려 17살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학교에서도 계속해서 우수한 성적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학교의 교육과정에 얽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혼자 힘으로 여러 학문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든 자연과학의 기본이자 역사가 깊은 학문인 물리학에
이끌리게 되면서 여러 차례 전과 신청까지 해보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오로지 혼자 힘으로 물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줄기 빛처럼 한국전 참전 미군 장교 부인회의 후원으로
유학생이 되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됩니다.
20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이휘소는 마이애미 대학
물리학과에 편입하게 되었고 불과 1년 만에 수석 졸업을 하고 
21살의 나이로 피츠버그 대학 대학원에 초고속으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원자핵 수업을 듣던 이휘소는 원자보다 훨씬
더 작은 세계를 상상해 보게 됩니다. 그는 높은 산과 깊은 바다
까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이 우주가 품고 있는 비밀을 
파헤치고 싶어 했습니다.
바로 원자핵보다 작은 우주의 기본 입자들을 연구하는 분야이자 
천재들만 한다는 소립자 물리학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은하수 하늘




2. 노력형 천재의 등장

 

 




26세에 물리학 박사가 되면서 낸 박사 논문은 세련되고 대담한
수학식으로 가득한 "K 이온 중간자와 핵자 상관 현상의 이중분산 표식에 관한 연구"
입니다. 이 논문이 학회를 통해 물리학계에 알려지게 되고 이를 계기로 이휘소는 
아주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몸담았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 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뉴욕주립대 입자물리연구소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이런저런 논문을 보다가 스티븐 와인버그의 '표준모형 방정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론의 논리적 완결성을 위해 직접 만든
개념인 "자발적 대칭성 깨짐"과 "힉스 메커니즘"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코르시카섬에서 열린
입자 물리 학교에 참가한 이휘소는 헤라르뒤스 엇호프트의 무한대로 발산하는
와인버그의 법칙을 다시 유한하게 수렴시키는 재규격화의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휘소는 연구 끝에 "자발적으로 부서진 게이지 이론의 대칭성"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논문으로 트로트는 와인버그의 법칙을 완벽히 연구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지도교수
마르티 뉴스 펠트와 함께 노벨상을 받는 영예까지 안게 됩니다.

 

 


이휘소 박사는 이론과 실험이 어우러진 진정한 물리학을 새롭게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립자 물리학의 메카 페르미 국립연구소에 입성하게 되어 물리학의 
황금기를 이끌던 이휘소 박사는 과학사에 남을 업적을 세우게 됩니다.
당대 물리학의 가장 이슈로 떠오르는 "참 쿼크에 찾아서"의 논문을 발표하게
되고 많은 물리학자가 너도나도 인용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논문을 접한 뒤에야 C퀴크와 그
반입자로 구성된 침입자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었던 버튼 리히터와 새뮤엘 팀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고 몇 년 후 약전 자기 이론으로 와인버그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파키스탄의 이론물리학자 압두스 살람 역시 "이휘소 박사의 연구가 없었다면
침입자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빠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회고했습니다.

 

 


3. 교육자와 연구자

 



한국을 2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 발전 기금을 
위한 미국 측 평가위원으로 한 달간 머물 예정이었습니다.
몰라보게 발전한 한국에 놀라면서 반면 여전히 낙후된 한국 물리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휘소 박사는 "한국 물리학의 발전을 위해서 투자해야 할 건 기구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 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학의 과학 교육을 완전히 뒤바뀐 기획안을 작성합니다.
"기술만을 위한 과학이 아닌 인간을 위한 과학을 해야 한다는" 감동적인 통찰이
담긴 커리큘럼이었습니다.
교육자로서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어느 때 보다 활발하게 보내던 시기
1997년 교통사고로 돌연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과학계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휘소와 값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스티븐 와인버그는 미국 물리학회지에
논문 한 편을 올립니다. 공동 저자인 이휘소 박사와 함께 그 논문은 
"무거운 중성미자 질량의 우주론적 하한선"입니다.
우주에 존재할지도 모를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무거운 경입자인 렙톤의 
최소 질량을 예측할 방법을 담긴 내용이었습니다. 초기 우주 팽창의 흔적과
암흑물질을 설명할 수도 있는 윔프의 존재를 예견한 논문입니다.
그의 눈부신 과학적 업적을 통해 인류는 우주의 근원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게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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